돈너 계곡에서 찾는 가족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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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아직 못한 ‘미혼’과는 달리 결혼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싱글들을 ‘비혼’ 이라고 하죠. 한국사회의 비혼 여성 숫자는 선진국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많이 늘어났습니다.

가임기 여성들의 출산율도 엄청난 속도로 낮아져서 한국의 고령화가 심각한 지경이 된다는 뉴스는 이제 새롭지도 않습니다.

이 상태로 800년 정도가 흘러서 2800년이 되면 한국 땅에 사람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왔습니다. 이대로 가면 가족의 몰락은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2800년엔 사람이 없다?
부쩍 가족의 해체에 대한 염려가 많은 때에, 최근 들어 저는 ‘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라는 독일 사회학자가 쓴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 내용 중에 아주 흥미로운 사건 하나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1846년 겨울, 미국의 시에라 네바다 지역의 산맥을 넘어 가다가 돈너 계곡에 갇혀 버린 81명의 이야기입니다. 11월 말, 서부를 향한 여정에서 산맥을 넘다가 때 이른 눈 때문에 월동 장구도 없이 계곡에 갇혀 버린 것이지요.

이 사람들은 흡사 세상 사람들의 삶을 축소해 놓은 것 마냥 아주 다양한 형태의 구성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젊고 팔팔한 독신 남성에서부터 핵가족, 여러 명의 친척들을 포함한 대가족, 늙은 독신자, 부자, 가난한 사람, 이민자 등등.

이들은 11월 말부터 구조대에 의해 다음해 4월에 최후의 생존자가 구조 될 때까지 무려 다섯 달을 엄동설한의 계곡에 갇혀 살아야 했습니다.

짐작을 한 번 해 봅시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어린이, 병든 노인, 연약한 아내가 더 잘 견뎌 내었을지, 아니면 젊고 팔팔한 독신의 남성들이 더 높은 생존율을 보였을지 말입니다.

텐트도 없고 변변한 침구하나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8살짜리 여자 아이도 20대 초반의 독신 남성도 산 속 계곡, 같은 환경에서 다섯 달을 살았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놀랍게도 마지막에 살아남은 사람은 이 청년이 아니라 8살짜리 여자 아이였습니다.

81명 중에는 팔팔한 독신 남성이 15명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독신들 중 무려 12명이 죽었고, 그 중 5명은 싸우다가 총에 맞거나 칼에 찔려 죽는,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가족 구성원이었던 노약자나 어린아이가 생존한 숫자는 얼마나 될까요. 어떤 가족은 무려 9명의 대가족 전원이 살아남기도 했고, 12명 중 8명이 살아남은 가족도 있었습니다.

또 한 번 놀랍게도 최고의 희생자 그룹은 독신남성들이었다고 합니다. 예상을 완전히 깨버린 거죠. 이런 극한 상황에서는 젊고 생명력이 넘치는 독신 남성들, 특히나 자기 외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한 이 남성들이 더 생존율이 높을 것이라는 일반의 상식을 깨 버린 사건이었습니다.

자기를 희생해 서로를 복되게 하다
하지만 가족의 가치를 잘 아시는 분들은 이 결과가 너무 당연하다고 할 것 입니다. 서로 돌보는 것, 가족을 위해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서로의 삶을 더 복되게 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가족의 참된 가치입니다.

이 가치가 돈너 계곡 조난자들의 경험을 통해 생생히 입증된 것입니다. 위험이 닥치면 가족들은 서로를 찾아 헤매고 같이 그 위험을 헤쳐 나가려 하지만 분산된 개인은 자기만 살려고 합니다.

비상구를 찾는 것도, 장애물을 제거 하는 것도, 자원을 얻는 것 모두, 가족의 힘을 합칠 때 더 낳은 결과가 오겠죠. 하지만 독신자들은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고 죽습니다.

12명 중 5명의 남성이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 죽은 사실이 그 증거이고 또 이들은 힘없는 이들을 매정하게 제거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들 중 12명이나 죽었습니다.

그러나 65세의 조지는 심한 부상을 입고도 다른 젊은 남성들 보다 더 오래 살았는데, 그 이유는 아내 톰슨의 지극한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3월 말경 조지가 죽자, 그 때까지 잘 버티던 아내가 이틀 뒤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삶을 지탱해 주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래서 가족은 숭고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 해체가 낳은 가족의 몰락
다시 한국 사회의 가족의 몰락을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 가정의 낮은 출산율은 경제적인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연구에 의하면 가정 경제 부분은 자녀 출산 결정에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양육과 노동이 문제입니다. 맞벌이 부부가 경제적으로 외벌이 보다 더 풍족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 젊은 부부들을 보십시오. 맞벌이 안 하는 부부가 얼마나 되는지요.

또, 경제적으로 풍족해 진 것으로 치자면 30년 전에 비해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죠. 그런데 지금 돈이 없어서 아이를 낳지 않지 않겠다는 건 사실 그리 설득력이 크지 않습니다.

부부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대가족 공동체,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아이를 낳으면 한 울타리 내에 살고 있는 대가족들이 육아를 분담해 주었고 걸음마 뗄 정도만 되면 마을 공동체의 공동 육아문화에 맡길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모여 놀고 시간을 보내고, 또 네 집 내 집의 구분이 그리 까다롭지 않아서 친구 엄마도 엄마고 엄마 친구도 엄마였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현대의 부모들이 느끼는 육아의 부담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닌 양육의 분담에 관한 문제인 것입니다. 공동체가 해체되자 연이어 이제 가족까지 몰락하는 상황이 된 거죠.

지금 한국의 엄마들은 맞벌이이건 전업주부건 아이들 양육에 관한 한 전적으로 엄마들만의 책임입니다.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기는 마음의 부담까지도 말입니다.

어쨌건 지금은 이렇게나마 가족이 유지되고 당분간은, 약 5-60년 정도는 북적거리며 살겠지만 그 이후가 되면, 즉 지금의 초등학생들이 할아버지가 되는 때가 되면 서울에도 폐교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상황입니다.

가족이 몰락한 다는 것은 곧 우리가 몰락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이 오직 고귀하게 간직할 수 있는 사랑, 박애, 희생정신 이런 것들이 몰락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가족이 몰락해 간다 할지라도 사랑은 지키고 싶습니다. 돈너 계곡의 조지 아저씨와 톰슨 부인처럼 말입니다.